제노비아는 서기 260년부터 273년까지 고대국가 팔미라의 왕비였고 태후였으며 후에는 여제(女帝) 지위에 올라 아나톨리아 반도 남동부에서 가나안 ,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 이집트까지 광대한 지역을 정복한 여장부다. 놀라운 것은 당대 최강의 제국 로마의 속주(屬州)들을 공격해 팔미라의 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을 아우구스타(Augusta)라 자칭, 한자문화권에 비유하면 '칭제건원' 하면서 지중해 세계에 팔미라의 자존을 선포했다는 점이다. 시리아 국민이 '우리들의 영원한 여왕님'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노비아 이야기다. "구릿빛 피부, 진주처럼 하얀 치아, 반짝반짝 빛나는 검고 커다란 눈,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여인, 그렇지만 힘은 강했는데 껴안고 싶은 여성스러움이 있어 아마도 오리엔트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이 아닐까?"라는 로마제국 쇠망사의 기록으로 유추해 보건대 제노비아는 오목조목 예쁜 스타일이라기보다 건장하고 잘생긴 유니섹스적 매력을 가졌던 것 같다. 제노비아의 출신과 부모에 대해 조상 대대로 팔미라 지역에서 통상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사막 호족의 딸로 어머니는 이집트 여성이라는 설이 있고, 아버지가 로마시민권을 획득한 인물인데 이름을 율리우스 아우렐리
무모한 사랑, 싹수가 노란 내일 일본 도쿄(東京)와 요코하마(横浜) 인근의 이즈(伊豆) 반도. 지금이야 세계적인 인구밀집 지역이자 일본의 중심지지만 1100년대 당시에는 벽지 중의 오지로 사람 살 곳 못 되는 열도의 변방이었다. 이곳에 이즈국(國)이라는 작은 영지가 있었다.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는 당시 일본의 실세 헤이지(平) 가문을 섬기는 가신(家臣)으로 이곳을 다스렸다. 그는 안 그래도 이런 변방에서 썩어가는 게 원통할 따름인데 요즘 천방지축 ‘딸년’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천황과 상황(前천황) 간의 내전인 헤이지의 난(平治の亂; 1159년)에서 패전해 이곳에 유배 온 미나모토(源賴)가문의 요리토모(朝)라는 녀석과 딸 마사코가 은밀히 만난다는 소문이다. 도키마사는 요리토모를 감시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여식(女息)이 유배 온 죄인과 연애를 하다니 절대 안 될 일이다’ 도키마사는 이즈국의 하급관리 야마키 가네타카에게 마사코를 급히 시집보냈다. 도키마사는 이제 한 시름 놨다고 생각했지만.... 마사코가 목침으로 새신랑의 뒷통수를 쳐 기절시키고 비바람 치는 밤을 달려 요리토모가 머물고 있는 깊은 산 속의 절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도키마
"우웩! 웩!” 생전 처음 타보는 거대한 목선. 노예선의 갑판 아래는 비린내, 땀 내, 음식 냄새, 온갖 악취가 섞여 창자까지 뒤트는 듯한 배멀미를 더했다. 비천하고 무식한 뱃 놈들의 비아냥거림과 희롱은 더 참을 수 없었다. 가져다주는 음식을 쏟아버리고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른다. “나를 당장 고향으로 돌려보내란 말야!!!!”... 돌아오는 건 불이 번쩍하는 따귀 뿐이다. 성직자의 딸에서 한순간 노예로 알렉산드라는 꿈을 꾸는 듯했다. 고향인 우크라이나 로하틴 지방의 조용한 마을에 타타르족 노예사냥군들이 들이닥쳤다. 저항하는 남자들은 너나없이 죽어 나갔고 집들은 불탔으며 포로가 된 사람들은 굴비처럼 엮여 어디론가 끌려갔다. 마을 정교회의 사제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려서부터 신실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아 온 10대 소녀에게는 너무나도 두렵고 충격적인 순간들이었다. 어부들이 실한 생선을 고르듯 타타르 도적들은 건장한 남자, 약골 또는 병자, 젊고 아름다운 처녀, 늙었거나 박색한 여자로 포로들을 분류했다. 알렉산드라는 타타르인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러 날 동안 윽박을 당한 후 크림반도에 있는 크림칸국의 궁정으로 끌려갔다. 이제 그녀의 운명은